Knowing
2009. Alex Proyas
 
 스포일러성 리뷰이며,
본 리뷰 작성일은 09.4.28 입니다.
 
8시에 지하철을 탔다. 아침의 4호선(사당까지의) 전철도 일단 뒤로 돌아서 타야하는 지옥철이다. 이래저래 사람들에게 치이고 발도 밟히기도 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쁜 아침 출근길이었지만, 나는 영화를 보러 가는 길이었으니까. 매주 화요일에는 하루 종일 수업이 없는 공강이어서 영화를 보러 가기 좋은 날이다. 돈이 없어서 일반시간대보다 3000원이나 저렴한 조조티켓을 끊었고, 이른 오전부터 할일없는 나하고 영화보러가줄 사람도 없기에,덕분에 혼자서 마음껏 내가 보고싶은 영화를 보아도 되고. 좀 외로워 보일수도 있지만, 뭐 괜찮지 않은가. 상대방이 내가 고른 영화에 대해 실망할까봐 이리저리 눈치보는 것보다야.

최근 개봉한 '노잉(Knowing)'은 제법 내 관심을 끄는 영화였다. 하지만, 예고편 볼 때부터 들었던 왠지모를 불길한 예감 대로 관람 후 평점은 악평이 많았다. 몇몇은 '괜찮았다' 쪽에 손을 들어주었지만, 그 외 대부분은 '괴팍하고, 이상한 영화' 쪽에 손을 들어주었다랄까. 아마 다른 누군가와 영화를 보러 가야했다면, 아마 이 영화는 포기하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오늘은 내 마음대로 영화를 골라도 상관이 없었고, 그래서 노잉을 보았다. 이 영화에 대한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괜찮았다' 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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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 알아도 소용없다.                      
 
이 리뷰를 보는 대부분의 사람은 이미 영화를 보고 분을 못이겨 씩씩이며 온 사람들일테니, 따로 개괄적인 스토리를 설명하지 않겠다. 영화의 초반에 니콜라스 케이지가 교수인 '테드'로 분하면서 MIT의 수업장면이 나오는데, 그 장면에서 테드는 학생들에게 우주의 '결정론'과 '무작위론'을 설명한다. '결정론은 이미 모든 섭리와 사건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정해져있으며, 무작위론은 그 어떤 인과관계도 없이 그저 무작위적인 확률에 의해 우주가 탄생하고, 그 광범위한 우주에서 인간이 존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교수님은 어떤 것을 믿으시나요?' 라는 학생의 질문에 테드는 무작위론이라고 답한다. 그러나 감독과 영화는 결정론을 택했다.

노잉의 감독인 알렉스 프로야스의 전작을 살펴보면, 영화 '노잉'의 기본적인 전제와 분위기를 알 수 있다. 그는 총 5편의 영화를 제작했는데, 그 중 사람들의 기억속에 존재할 작품들을 나열하자면, '다크시티'와 '아이 로봇', 그리고 이번에 개봉한 '노잉'이 있다. 영화 중 테드의 동료 교수가 말한대로 내가 지금 말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쪽으로의 해석일지도 모르지만, 위의 세 영화에서 기본적으로 간주되는 인간이란 존재는 무력하고, 피동적인 존재들이다. 다크시티에서의 인간은 외계에서 온 이방인들에게 실험을 당하는 실험용 쥐같은 존재이고, 아이 로봇에서는 인간이 하도 답답한나머지 차라리 자신들의 지배 아래 목숨만 부지하라며 로봇들에게 쿠테타를 당하는 입장이다. 노잉에서도 기본적으로 인간은 무력하다. 테드는 50년전의 예언서에서 인류가 멸망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만 아무것도 할수가 없다. 그저 자신이 무얼 하든 예정되로 진행되어가는 재앙 속에서 괴로워하며 인류의 멸망 예정일이 다가오는 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다. 인류의 시작이 어떤 의미와 예정대로 진행되었 듯 그 끝도 예정대로 진행되는 것이다. 이 잔혹한 결정론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정리하자면, 이것이 감독이 하고싶었던 말이다.

솔직히 나도 이런 인간의 무력함과 결정론을 설파하는 감독의 주장에 대해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야할지는 대책이 없다.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다 때려치고 그냥 되는대로 살아라? 이게 교훈이라고 볼 수는 없지 않은가. 다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일종의 비꼼이나 경고가 아닐까 싶다. 인간 자신의 존재와 힘에 대한 과시를 비꼬는 것. 다른 재난 영화에서는 인간은 기필코 자신앞에 주어진 재앙을 이겨나간다. NASA에서 우주선을 발사해서 기어코 지구로 다가오는 운석에 착륙시키거나(아마겟돈), 아니면 멈춰버린 지구를 다시 돌리기 위해 땅을 뚫고 들어가고(코어), 인간이 마음에 안들어서 다 없에버리겠다고 온 외계인을 인간애를 설파하며 설득하기도 한다(지구가 멈추는 날). 아무래도 알렉스 프로야스 감독은 이런 인간의 떼쓰는 근성이 마음에 안들었나보다. 그래서 한번쯤은, 무기력하게 재앙에 손놓고 있는 인류를 보여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슬픈 자들을 위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데우스 엑스 마키나. 그리스어로 '기계장치를 타고 내려오는 신' 이라는 뜻이다. 고대 그리스 연극은 하물없이 꼬여버린 암울한 비극이 많았고, 그 중에는 사건이 너무 꼬이고 꼬이다 못해 극작가 자신도 도저히 풀어낼 수 없을 듯한 비극이 있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잔뜩 꼬여버린 상태에서' 안좋게 끝내기에는 관객들도 우울해하고, 연극에도 의미가 없다. 원래 인간은 희망을 원하는 존재이니까. 그래서 그들이 고안해낸 것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였다. 잔뜩 꼬여버린 비극적인 인간들을 위해 직접 신이나 절대적인 존재가 강림하여 그 사건을 중재해주는 것이었다. 개연성이 있던 없던, 뭔상관이겠는가. 신이와서 해결해준다는데. 결국 이것은 극작가들에게는 각본을 정리할 수 있는 툴(tool)이 되었고, 관객에게는 비극의 마지막에서 희망을 볼 수 있는 청량제가 되었다. 이것이 연극에서는 신의 분위기를 강조하기 위해 공중에서 기계장치로 신을 연기하는 배우를, 마치 하늘에서 강림하듯 무대에 내려 연기를 시켰고 이 때문에 이 극적인 장치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 로 불리게 된 것이다.

아마, 감독인 알렉스 프로야스는 꽤나 고심했을 것이다. 다크시티와 아이로봇에는 그나마 이에 저항할 수 있는 인물이 있었는데, 노잉같은 경우는 태양의 폭풍이라는 우주적 재앙이고, 이를 한 개인이 무슨 수로 막겠는가... 아무리 상상해도 결론이 날 턱이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저 자신의 이야기대로 인간들이 뭘하든 모조리 죽여버리자니 관객들의 입맛에 그 암울함과 황당함이 들어맞을리도 없지 않겠는가. 고대 그리스 극작가들과 똑같은 고민을 하던 그는 역시 그리스 극작과들과 같은 대책을 택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절대적인 존재가 내려와서 사건을 중재해주고, 희망을 남기는 장치를 택한 것이다. 그리고 그가 명색이 SF 감독이고 또 글로발 시대에 특정 종교를 택할 수 없는만큼, 절대적인 존재에 신 대신 절대적인 외계인을 삽입한 것이 아닐까. 또 영화 자체가 정해진 재앙에 대한 이야기인 만큼, 인간과 절대적 사건 사이의 (힌트는 주되, 결코 모두를 구원하지는 않는) 중립적 존재로써도 쓸 수 있으니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결국 외계인들은 이 잔뜩 꼬여버린 인간과 재앙 사이에, 개입하여 마지막 순간에 인류의 희망이자 시작인 아이들을 구원해간다. 대부분의 인류는 재앙에 휩쓸려 멸망하지만, 그래도 희망은 남겨둔 셈이다. 신인류의 탄생을. 자 이제 그럴듯한 비극과 그 끝의 배려인 희망이 남게 된 것이다. 감독의 안심의 한숨소리가 귀 옆에 들려오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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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은 모두 다르다. 그러니 그냥 즐겨보라.
 
솔직히 '노잉'은 그닥 성공할만한 영화는 아니었다. 예정된 재앙과, 그에 대한 인간의 무력함이라는 기본 플롯도 '쳇' 소리 나고, 나름 감독이 관객을 배려해서 준비해놓은 마지막의 '외계인에 의한 구원'도 황당한 나머지 '이건 뭥미!' 소리 밖에 나오질 않는다. 아마 감독은 기본 플롯을 구상해놓고, 할리우드산 영화인만큼 관객을 배려하여 후에 결말을 구성하여 역삽입 한 듯하다. 기본 이야기에 추가적 장치를 억지로 박아넣었으니, 그러니 아주 잘만든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다. 다소 개연성도 떨어지고, 흐름도 까끌까끌하다. 하지만, 원래 영화가 그렇지 않은가. 영화의 시초는 연극이고, 연극의 시초는 이야기였다. 이야기는 허구다. 나의 상상을 과장시켜서 남에게 내 생각과 함께 감정의 여흥을 남기고 싶었던 목적에서 시작된 것이다. 개연성이 없더라도, 다소 설득력이 떨어지더라도, 아예 내 입맛에 안맞을지언정, 그래도 또 다른 누군가의 '상상'과 '생각'을 맛본다는 것은, 괜찮은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노잉에 대한 평가 중, '돈이 아깝다' 라는 평이 많다. 재미가 없었을테니 뭐 그럴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노잉은 그래도 막나가는 이야기도 아니었고, 감독의 재미있는 발상과, 관객을 배려한 (그게 더 역효과가 되었지만) 장치가 돋보이는, 노력한 눈치가 보이는 영화였다. 아주 훌륭한 영화는 아니어도 C급 졸작이나 욕을 들어먹을 만한 영화까지는 아니라는 점이다. (진정한 C급 영화를 꽤 본 사람으로서 -__-;;) 게다가 현대의 기술력을 동원한 스펙타클한 시각적 표현까지 들었으니 적어도 눈요기는 되지 않았는가. 감독의 손맛과는 완전히 입맛이 안맞는 사람들이라면 7000원이면 좀 아까울 사람도 있겠다. 하지만 4000원 쯤이야 담배 두갑 가격이니 들일만 하다고 본다. 적절한 가격대 성능비를 원하는 사람은 조조로 영화를 보거나, 후에 DVD를 빌려서 보길 바란다.

본래 상품에 대한 불만족은, 상품에 대한 기대에서 비롯된다고 하니...
 
* 리뷰마다 결말에 대한 해석이 많이 다른데, 카톨릭 쪽의 느낌을 떠올리는 분도 많다. 구원이라는 이미지와, 외계인들이 우주선으로 돌아갈 때 천사의 날개와 엇비슷한 날개를 펼치고 올라갔다는 점, 그리고 멀린다의 책상의 성경과, 신에 의한 구원을 상징하는 듯한 그림, 마지막으로 최후의 장면에서 아담과 이브를 떠올리게끔 하는 두 아이의 모습 때문이 아닐까. 이러한 것이 틀리다는 것은 아니나 무작정 종교적인 느낌으로 몰고갈 것도 아니다. 원래 이 감독이 종교와는 거리가 좀 멀고, 마지막 결말에서 두 아이만 살아남았다는 정설도 없다. 마지막 장면에서 수많은 우주선들이 지구로부터 벗어나고 있는 장면이 나오고, 그 안에 또다른 '아이'들이 있다고 추정할 수도 있다. 물론 보는 이에 따라서 그 안에는 인간이 아니라 동물이 있고, 이게 그러니까 '노아의 방주다' 라고 해석하기도 하는데 말그대로 생각대로 보이는 법이다.


태그 : 노잉,영화
 

Lock, Stock And Two Smoking Barrels

1998. Guy Ritchie. England

 

'한 남자가 다리 난간에 엉거주춤하게 매달려 있다. 한손으로는 난간을 붙잡고 있고, 다른 한손으로는 모포에 싸여진 오래된 장총 두자루를 쥐고 있다. 그리고 입으로는 핸드폰을 물고있다. 그 순간 핸드폰이 긴박하게 울린다. 뭔가 중요한 통화일 것 같은데, 전화를 받을 수가 없다'

 

이 한 장면만 보고 대체 어찌된 영문인지 내용인지 예측할 수 있는사람이 있을까?. 아무래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상상력이 기발한 사람이라고 해도, 위와 같은 엉뚱하다 못해 황당한 장면을 단서로 전체의 이야기를 유추하기는 무척이나 힘들 것이 분명할테니.

 

우리는 애초에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하는 일마다 안될 때 '일이 꼬인다' 라는 말을 사용한다. '일이 꼬인다는 느낌'은 직접 당하는 입장이건, 아니면 제 3자로서 그 일을 지켜보는 입장이건 모두에게 '답답하다' 라는 알 수 없는 불쾌감을 불러일으킨다.

 

예를들어, '24시' 라는 미드를 본다면, 보면 대충 어떤 느낌인지 체험할 수 있다. 무언가 해결되는 듯하지만 다시 꼬이는 일들을 지켜보는 심정. 제 아무리 시원한 액션과, 멋진 배우가 나온다고 해도 그 묘한 답답함을 해소해주지는 못한다. 설령 그게 나랑 전혀 상관없는 드라마 속의 사건 일지라도.

 

그런데 이번에 소개해줄 영화는 일을 한두번 꼬다못해 왠지 사건이란 실들을 뭉쳐 실타레로 만들어놓았을 법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근데 신기한건, 사건을 한두번만 꼬아놓으면 '답답해!' 라고 소리치게 만들지만, 실타레처럼 뭉치로 꼬이면 결국 출처를 알 수 없는 '웃음'을 유발한다.

 

더러운 일 하면서 푼돈이나 만져온 멍청한 네명의 영국 사나이들이 있다. 그들은 각자 돈을 모아 도박판에 '투자' 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그 도박판에는 나름 사람을 꿰뚫어볼줄 안다는 네명 중 한명이 투입된다. 그러나 카드를 아무리 잘해도 몰래 카메라까지 동원하는 전문 도박사기범들한테는 당할 수 없다. 결국 네명의 사나이들은 수십만 파운드의 빚을 지게되고 '일주일 내로 돈을 갚지 않으면 손가락을 잘라버리겠다'는 무시무시한 협박을 듣게 된다. 일주일 안에 거금을 구해야 하는 주인공들. 엉뚱한 계획만 서로 내놓다가 소음이라고는 전혀 차단하지 못하는 갸날픈 벽 사이로 옆집의 또다른 악덕 범법자일당의 '돈 좀 될만한 계획'을 엿듣게 된다. 여기까지가 엉키디 엉킨 실타레의 첫 무렵이다.

 

일이 어딘가에 숨겨져있는 인과관계를 통해 '우연'이라는 단어로 포장되어 어떻게, 얼마나 꼬일 있는지는 직접 감상하고 확인하시라. 총성이 난무하고, 피가튀는 런던의 잔인한 뒷골목 이야기지만,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게다가 다른 영화에서 찾기 힘든 독특한 카메라 워크는 또다른 느낌을 줄 것이다.

 

정리하자면, 두번 봐도 나름 재미있는 추천 영화. 평소에 '딱보면, 딱나오는' 뻔한 이야기의 코미디에 질렸다면, 괜찮은 선택이 될것이다.

 

*내가 영국 영화를 좋아하는 것은 '돈이면 다된다' 철학의 미국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찾을 수 없는 재미가 있으며, 전혀 해석할 수 없는 지루한 프랑스 영화보다는 재미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의 그것과는 다른 구수한 억영의 영국식 영어와, 배경음악으로 나오는 영국 락이나 음악들은 보너스.  

 

*여담. 일이 꼬이고, 꼬이다보면 가끔은 결국 예상하지도 못했던 콩고물이 떨어진다.

  그 콩고물의 가치를 몰라서 문제지.

 

*혹시 이 영화의 제목인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Lock, Stock And Two Smoking Barrels)의 뜻을 절대 이해 못하겠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지식인에서 퍼온 사실 한가지. Lock은 총의 방아쇠, Stock은 개머리판, Barrel은 총신을 뜻한다. 직역하자면 ' 방아쇠, 개머리판, 그리고 연기나는 두개의 총신'. 위 단어들은 모두 합쳐서 '하나의 총, 전부' 이기 때문에 '모조리, 전부' 라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직역이든 억지 해석이든 둘 다 말이 된다는 것을 영화를 모두 보고나면 알 수 있다.

*이 영화에서는 준무명 시절의 제임스 스타뎀도 나온다. 이 영화를 본지도 꽤 오래되었는데(3년 정도 되었나) 떄는 전혀 몰랐다,그냥 무명배우인줄 알았는데 이렇게까지 뜰줄이야....

 

태그 : 영화


Waikiki Brothers

2001


'성우야, 행복하니?. 우리들 중에
하고싶은 일 하면서 사는 너밖에 없잖아.
.....그렇게 좋아하던 음악하면서 사니까
행복하냐고?'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밴드를 했던, 음악을 좋아했던 성우. 그리고 군 제대 후에도 음악을 하고싶어 사람들을 모아 밴드를 만든다. 밴드 이름은 촌스러운 '와이키키 브라더스'. 그러나 처음에는 일곱명이었던 밴드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떠나가면서 단 네사람만 남는다. 밤무대와 별볼일 없는 무대를 전전하며 많지 않은 돈만 만지는 인생이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무대를 옮기고 옮기다가 결국 성우의 고향의 한 카바레 무대에 서게 된 와이키키 브라더스. 성우는 그곳에서 옛 친구들과, 마음의 지지대였던 음악 선생님, 그리고 첫사랑을 만나게 된다.
 
 
'꿈을 따라간다'. 여섯자 밖에 안되니 말하기도 쉽고, 그리고 그 자체로도 달콤한 문장. 누군가 현실과 꿈 사이에서 고민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고싶은거 해라' 라고 말한다. 정말로 그 사람의 미래에 대해 걱정할 정도로 관심이 있지 않은 이상 이렇게 조언해 주는게 가장 편하고, 그럴 듯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꿈을 따라가는 사람에게 항상 달콤함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실을 따라간 사람들보다 씁쓸한 인생을 살아야 할 때도 있다. 자신의 꿈이 빛이 바래 지저분하고 처절한 현실이 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꿈은 그냥 꿈일 때 가장 달콤하다' 라는 말이 그럴 듯 하다라고 생각하게 될 수도 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음악'이라는 꿈을 따라갔던 한 사내가 그의 꿈이 고단한 현실이 되어 돌아올 때, 그리고 그와 함께 과거에 꿈을 공유했던 사람들과 단절됨을 느낄 때, 어떤 선택을 할지 보여주는 영화. 보통의 영화들은 꿈을 따라가는 주인공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긍정적인 지지를 보내준다. 그러나 이 영화는 끝까지 처절하고, 너저분한 현실만 보여준다. 어떤 사람들은 '리얼리즘'이라고 표현한다. 극적인 요소도 없으며, 그저 주인공이 고단한 현실을 겪으면서 자신의 꿈에 대해 회의를 가지게 되는 과정과 마지막 선택을 잔잔하게 표현할 뿐이다. 그래서 어떻게보면 지루한 영화일수도 있다. 그래도 가끔은 파도같은 감동보다는 잔잔한 강물같은 감동이 효과적일 때가 있다.
 
그래서 와이키키 브라더스에 TTU. (Two Thumbs Up)
 
.그래도 꿈은 꿈이더라. 좋아하는거 보면.
 
 
Ps.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2001년 작이라 왠지 얼마 안된 것 같지만 그래도 올해로 나온지 6년 째 되가는 영화. 당시에는 비교적 무명이었던 배우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주인공인 성우의 고등학생 당시 모습을 박해일이 연기했는데, 괜찮았다. (이미지가 은근히 매치된다)